취향의 발견
2.시선으로부터,-정세랑 본문
2021.08.13-08.17
시선으로부터.
처음엔 '사선으로부터'라고 대충 읽고 빌렸는데 사선이 아니라 '시선'이었다.
어떤 시선을 말하지 궁금했다. 표지에는 수정으로 보이는 파란 광물 사진이 덩그러니 있고 그 아래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정세랑 작가가 썼다면 분명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구에서 한아뿐'을 재미있게 읽어서 다른 작품을 찾아보다 '섬의 애슐리'도 읽었다. 두 작품 모두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졌다. 글의 따뜻한 분위기와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았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어떤 작가의 글을 믿고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게. 그래서 '시선으로부터,'도 기대를 한가득 안고 읽기 시작했다.
내 예상과 달리 '시선'은 사람 이름이었다. 심시선과 그녀로부터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
시선이 세상을 뜬 지 10주기가 되는 해에 큰 딸이 하와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제사를 지내겠다고 선언한다.
일반적인 제사가 아니다. 시선이 젊은 날 시간을 보내 하와이에서 각자 여행을 하며 기뻤거나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와서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 새로운 제사 방식에 확 이끌려 모니터 한편에 심시선 가계도를 띄워놓고 열심히 등장인물을 찾아가며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금방 파악했고, 그때부터 더 몰입해서 읽었다.
그저 시대를 앞서간 진취적인 여성의 삶에 대해 남은 가족들이 추억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선이 20세기를 살며 겪은 개인적인, 시대적인 문제들은 그녀의 기록을 통해, 그때부터 이어진 현재의 문제들은 각각의 가족 구성원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했던 폭력들, 이주자로써의 경험, 이혼과 재혼을 통한 가족의 재구성, 환경과 제국주의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 든다. 한 소설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문제를 다룰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주제들을 개성이 강한 가족 한 명 한 명을 통해 풀어내서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시선으로부터 나온 가족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표지에 쓰인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곱씹어봤다.
중간쯤 읽었을 때에는 확실이 이해한 것 같았는데 책을 덮고 나니 어렴풋하다. 다음에 또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시선으로부터,'라는 제목은 심시선으로부터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의미와 함께 그들이 각각 삶을 대하고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라는 중의적 의미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소설 속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다양한 문제들이 나오지만 이야기 안에 나오는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무거운 느낌보다 오히려 따뜻한 마음이 든다. 이전에 정세랑 작가의 작품에서 느꼈던 것처럼.
하와이 제사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작가 가족의 농담으로부터 나왔다는 것과 가족이 겪은 시대적 비극을 작품에 담아 기억하게 했다는 것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코로나 이후 첫 여행지를 하와이로 정했다. 내년 말쯤 되면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 영어공부 열심히 해야지. 낯선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훌라도 배우고 서핑도 하고 헬기 타고 화산도 보고. 시선의 가족들이 잊지 못할 경험을 한 것처럼 나도 하와이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와야지. 글로 적었으니까 이루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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